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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평등#교육

    아는게 힘이다

    …내 삶이 불편한 이유를 찾기 위한 공부는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된다.

    공기처럼 접하고 지낸 차별이나 혐오는 한 개인이 생각하는 방식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이 차별과 혐오를 어렴풋이 깨닫게 되면 불편함이 시작된다. 내 삶이 불편한 이유를 찾기 위한 공부는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된다.

    고양국제고의 인권동아리 ‘마이너리티’ 회원 손영은양(17·가명)은 “너는 대학 가서 시집만 잘 가면 된다”는 부모의 말에 불편함을 느꼈다. 그는 동아리에서 친구들과 함께 <이갈리아의 딸들> <악어 프로젝트> 등 페미니즘과 인권에 관한 책과 논문을 읽고 페미니스트 학자인 리베카 솔닛의 내한 강연을 함께 듣기도 했다.이 과정에서 자신이 상처를 입은 이유는 그것이 여성혐오적 발언이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혐오 표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아는 것이 힘’이다. 같은 학교 페미니즘 동아리 퓨로의 이수지양(17·가명)은 수업 도중 교사의 성차별적 발언에 직접 맞섰다. “여자는 늙으면 애를 못 낳지만 남자는 애를 낳을 수 있어서 여자가 남자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말에 “그건 아니지 않나요”라고 대꾸했다. 김양은 “차별적 발언이 어떤 부분에서 잘못된 것인지를 짚는 데 독서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같은 동아리 김지우양(17·가명)은 “막상 혐오표현을 접하면 추상적으로 기분이 나쁜데, 책을 읽고 공부하면 왜 기분이 나쁜지 알게 되고, 혐오표현에 반박할 때 내가 정리가 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논리적인 반박은 혐오표현을 중단시킬 수도 있지만, 스스로 자신감이 생긴다는 것에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

    너무나 뿌리깊게 자리 잡은 관용어의 차별성을 고발하기 위해서는 ‘아는 것이 힘’이다.

    류민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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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혐오 표현,
    그 의미를 알고 나면
    사용을 자제하는 이들도 많다.

    #성평등#교육

    그건 혐오입니다

    …충북 보은여고의 교실의 칠판 한 귀퉁이. 복잡한 수학 방정식 옆에 ‘오늘의 혐오표현-김치녀, 사용하지 않기’라고 적혀있다. 이 학교의 인권동아리 ‘소수자들’ 회원들이 써 놓은 것이다. 김하린양(17)은 “혐오표현을 줄이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논의하다가 나온 방법”이라면서 “생각보다 효과가 괜찮아서 지난 4월부터 매주 단어를 바꿔 계속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양은 “친구들끼리 혐오표현을 쓰다가도 ‘칠판에 써 있잖아, 쓰면 안 돼’하면서 사용을 자제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대부분 청소년들은 인터넷이나 미디어를 통해 접한 혐오표현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못한 채 그저 재미나 장난으로 쓴다. 나쁜 걸 알고도 쓰는 이들도 분명 있지만, 알고나면 사용을 자제하는 아이들도 많다.

    김양은 “‘병신’이 장애인 비하 발언이고, ‘김치녀’가 여성혐오적 표현도, ‘급식충’이 청소년 전체를 비하하는 표현이라고 얘기하면 친구들이 ‘몰랐다’고 하면서 표현을 자제하고 다른 친구에게 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수원의 한 중학교 인권동아리 회원 이혜영양(15·가명)도 친구들이 혐오표현을 쓰면 앞장서서 말린다. 이양은 “친구들이 ‘강간농담’을 했다. 조두순 사건 때 ‘조’를 빼고 아이들 성을 따서 ‘김두순’ ‘윤두순’ 식으로 말했다. 그건 범죄고 실제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는 사건이니까 쓰지 말라고 했다”며 “종이에 하나하나 적어가서 혐오표현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적어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진지충’이라고 불리는 것을 감수했지만 성과는 있었다. 앞장서 혐오표현을 쓰던 아이가 “노력하겠다”고 답변을 했다.

    혐오표현의 어원이나 상대방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지 ‘알고 나면’ 바꾸는 경우도 있다. 늘 성공하진 않겠지만 충분히 해볼만한 시도.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

    칠판의 ‘일러둠’은 엄격한 의미의 ‘검열’이나 ‘금지’가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차별에 대한 대화를 만들어내는 의미있는 노력이다.

    류민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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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연대

    당신이 한 혐오를 알고 있다

    …내가 겪은 혐오와 차별을 기록하고 공유하면 힘이 된다.

    …“17년 4월 5일 3교시 수업 중 배우자를 선택해야만 하는 이유가 ‘이기적인 사회’를 환기시킬 수 있다고 표현. ‘결혼 > 육아’ 루트가 당연하다고 표현.” “17년 4월 11일 2교시 수업 도중 ‘몸 비뚤어지면 어느 남자가 좋아하겠냐’고 발언.”

    충북 보은여고 인권동아리 ‘소수자들’에서는 기록장을 쓴다. 학교 수업이나 일상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이 쓰는 혐오 표현을 기록으로 남기고 공유하기 위해서다. 김하린양은 “교과서에도 성차별적 내용이 너무 많다. ‘여성이 사회적 진출을 하면서 저출산이 심화됐다’는 표현이 그냥 써있고, 가족을 그린 그림에도 남자 어른이 제일 위고 밑에 여자와 아이들이 있는 등 성차별적 고정관념이 그대로 담겨 있다”고 말했다. 학교 밖 사회에서 접하는 혐오와 차별도 공유한다. 김양은 “친척 결혼식에 갔는데 주례가 성차별적 이야기를 하면 ‘이런 얘기를 들어서 기분 나빴다’며 친구들과 단톡방에 공유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경험을 나누면 힘이 된다. 김민영양(17)은 “밖에서 받는 차별들, 혐오표현들을 털어놓을 데가 생기고 함께 화내고 감정을 공유해줄 친구들이 생기니 혼자 속상해하고 넘겼을 때보다 힘이 난다”며 “감정을 적극적으로 풀어내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혐오표현에 대응하며 “힘이 난다”는 것에 주목한다. 혐오표현에 대한 대응은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알고 주장하는 자력화(empowerment)의 시작이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

    혐오와 차별의 해악 중 하나는 피해자와 소수자집단을 침묵하게 만드는 간접적 검열이나 무기력감이다. 일단 모여서 기록하고 목소리를 내자.

    류민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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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평등#교육#연대

    없는 매뉴얼, 우리가 만든다

    …성평등 교육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말하는 가장 큰 수혜자는 ‘남성성’의 틀에 맞지 않는 남학생이었다.

    학교 현장의 ‘성평등 교육’은 겉핥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여자도 의사가 될 수 있다’ ‘남녀차별을 하지 말자’는 선언은 있지만, 일상 생활과 문화, 사회 속에 존재하는 성차별에 대한 제대로된 교육은 이뤄지지 않는다. 이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한 현직 교사 13명으로 구성된 초등성평등연구회는 성평등 교육 매뉴얼을 만들어 공유하고, 수업에 적용하고 있다.

    고정된 성역할에 기반한 가상의 학급규칙을 만들어 고정관념이 왜 잘못됐는지를 아이들이 깨닫게 하는 것이 일례다. “남자는 훗날 성공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수업을 1시간 더 받고 간다” “여자는 연약하기 때문에 체육시간에는 구경만 한다”같은 명제를 아이들에게 건네고, 남녀 임금격차와 노동시장에서의 차별에 대해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준다.

    윤모 교사는 “‘남자답다’ ‘여자답다’에 대해서 느끼는 바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뚱뚱하다’ ‘못생겼다’는 식의 외모평가 놀이가 잘못됐음을 반복적으로 지적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며 “누군가를 이유없이 비난하고 혐오하는 것에 대해 제재하니 교실 내 폭력이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성평등 교육의 가장 큰 수혜자는 전형적인‘남성성’의 틀에 맞지 않는 남학생이었다. 윤 교사는 “이같은 학생들은 남성 집단에서 배제되고 여학생들에게도 놀림감이 되었는데, 성평등 교육 이후 그 아이의 개성 자체로 받아들여지게 됐다”며 “남학생도 남성성의 강요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고, 교사도 권위를 벗고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며 아이들과의 관계도 재정립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일상에서의 차별문제들을 모두가 토론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 이래서 혐오와 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

    대화를 ‘촉진’하는 좋은 인권/반차별 교육의 흐름이 고무적이다.

    류민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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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

    기분 나쁘면 웃지 않아도 된다

    …혐오와 차별이 섞인 ‘농담’에 안 웃을 권리가 있다. 웃기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혐오와 차별 발언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니애미’ ‘앙 기모띠’와 같이 일상적으로 쓰이는 혐오표현에 불쾌감을 느끼더라도 마지못해 웃는 아이들이 많다. 농담을 웃어넘길 수 있는 ‘쿨한 애’가 되지 않으면 ‘진지충’이라는 힐난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웃기지 않으면 안 웃어도 된다’는 당연한 이야기는 교실 뿐 아니라 사회 속에서도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등 소수자를 비하하는 ‘농담’은 우리 생활 곳곳에 그만큼 많이 포진하고 있다.

    이같은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한 마디는 ‘웃기지 않는다’이다. 개그맨 장동민·유상무·유세윤으로 구성된 ‘옹달샘’이 팟캐스트에서 여성비하, 장애인 비하 등을 일삼아 사회적 문제가 되자 이들이 사과한 사례도 있다.

    초등성평등연구회 윤모 교사는 “아이들에게 차별과 혐오 섞인 농담에 정색하고 기분 나쁘다 말하고, 절대 웃어주지 말라고 얘기해준다”며 “기분이 나쁘면 웃어주지 말고 무표정으로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할 일을 다 한 것이다. 용기가 더 난다면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쿨할 것’을 요구받는 건 여학생 뿐이 아니다. 남학생들도 또래 집단에 끼기 위해 마지못해 혐오표현을 쓰기도 한다. 박모 교사는 “혐오표현이 쿨하고 멋진게 아니다. 찌질한 것이고 남을 괴롭히는 행동일 뿐이라는 걸 반복해서 말해준다”고 말했다.

    웃기려고 한 말에 웃지 않는 것에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처음에는 자신이 고립되겠지만 적극적 대응을 통해 거꾸로 혐오발화자를 고립시켜야 한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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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이 벌어진 이후에
    문제를 해결하는데 급급하지 말고,
    인권침해나 혐오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예방하기.

    #성평등#교육#성소수자#연대

    ‘혐오 금지’ 자치규약 만들기

    …2015년 5월 서울대 봄 축제. 남성끼리 무대에 올라온 팀에게 사회자가 말했다. “두 분 부모님께서 이런 거 아느냐.”

    성소수자 비하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말이었다. 같은해 학내 학생홍보대사 ‘샤인’ 신입회원 모집 면접에서는 성희롱, 외모 비하, 지역 비하적 발언이 나와 논란이 됐다. 소수자를 향한 노골적 적대행위도 있었다. 지난해 서울대 성소수자 동아리 ‘큐이즈’(Queer In SNU)의 신입생 환영 현수막은 절반으로 찢긴 채 발견됐다.

    학내에 차별과 혐오의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구체적 발언과 행동으로 이어지면서 서울대 인권센터와 총학생위원회는 ‘서울대 인권가이드라인’ 제정 작업에 착수했다. 교수·학생·직원 등 학내 모든 구성원의 인권을 다룬 것으로, ‘생물학적 성별,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장애, 나이, 경제적 상황, 출신 지역, 인종 등을 포함한 불합리한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다’는 평등권 조항이 명시됐다. 또한 혐오폭력 및 증오범죄 금지 조항도 포함됐다. 인권가이드라인 제정을 준비중인 김보미씨는 “사건이 벌어진 이후에 문제를 해결하는데 급급하지 말고, 인권침해나 혐오범죄를 일어나기 전에 예방할 수 없을까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인권가이드라인의 정식 제정은 시흥캠퍼스 설립을 둘러싼 본부와 학생회 측의 갈등으로 미뤄지고 있는 상태다.

    카이스트, 고려대, 성공회대 등 다른 대학에서도 소수자 인권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다. 카이스트는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를 발족하고, 인권가이드라인 제정 작업에 착수했다. 한성진 카이스트 부총학생회장은 “학생들에게 보장돼야 하는 보편적인 인권이 무엇인가, 어떤 것을 차별행위로 보고 제재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하고 장애인, 성소수자 등의 인권에 대해서도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혐오표현을 금지하는 법도 필요하고 학칙도 필요하지만, 각 자치단위에서 자치규약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실천이다. 단위가 작으면 더 좋다. 과학생회에서, 동아리에서 학회에서, 혐오표현 금지 자치규약을 만들자.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

    자치규약의 규범으로서의 효력 뿐만 아니라 그 규약을 만드는 과정도 소중하다. 사회 전반의 큰 틀의 변화는 요원해보이지만 내가 속한 공동체부터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은 모두를 힘나게 한다.

    류민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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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평등#교육#연대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한 이유. 개인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임을 인식한다.

    “…성차별적 농담, 음담패설에 웃지 않고 정색한다. 피해자에게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준다. 개인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문제임을 인식한다.”

    영화 <걷기왕>의 콘티북에 실린 성희롱 예방 교육 내용이다. 교육 내용엔 가해자와 피해자 뿐 아니라 ‘동료를 위한 매뉴얼’도 등장한다. 성희롱이 발생했을 때 제3자가 침묵하거나 방관하지 않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계에서는 지난해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졌고, 영화 <걷기왕>에서 최초로 영화 스태프가 영화 촬영 전 함께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아 화제가 됐다.백승화 감독은 “다른 현장에서 성희롱 예방교육을 하면 일부 남성 스태프들은 ‘우리가 애들도 아니고 왜 교육을 하냐’는 반응을 보인다고 들었다. ‘잠재적 가해자’로 본다는 심리가 숨어있는 것 같았다”며 “제3자는 목격자 입장이다. 가해자 피해자가 될 사람들보다는 목격자가 될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점에서 목격자로서 어떤 행동을 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백 감독은 “교육을 통해 문제가 생겼을 때 나서서 도와줄 수 있는 제3자가 지금보다 많아지고,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고만 있어도 문제가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변화는 극적이지는 않지만 천천히 이뤄지고 있다. 백 감독은 “<걷기왕> 이후 영화계에서 성희롱 예방교육이 있다는 걸 알게되고, 방송·드라마·연극 쪽에서도 예방교육을 받으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현장이 변화했다기 보다는 다음 단계에 갈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준비 중인 웹드라마 <오목소녀>에서도 촬영 전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성희롱은 대부분 조직적 문제다. 함께 교육받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해결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현장 목격자의 즉시 대응을 고민했다는 것이 특히 인상적이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

    차별과 혐오표현에 가장 좋은 대응은 예방 아니겠는가. 현장에서의 흐름이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다.

    류민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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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제도

    “법에서 차별이라고 합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법과 제도를 알고, 이를 알리는 것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된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상징과도 같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는 처음부터 장애인이 아니었다. 해병대 출신의 건장한 남성이었던 그는 스물 네 살 때 행글라이더를 타다 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됐다. 잃어버린 건 두 다리 뿐이 아니었다. 가족과 사회의 대우, 모든 것이 달라졌다.

    비 오는 날 교회를 가기 위해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가 “119를 불러서 가지 왜 택시를 타냐”고 말했다. 하지만 박 대표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박 대표는 “당시 장애를 내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해 ‘내탓이요 내죄’라 생각하며 그저 눈물만 흘렸다”며 “지금이라면 장애인 차별금지법에 따라 항의하고 인권위에 진정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애인은 소수자 가운데 유일하게 제도적으로 차별적 괴롭힘이 금지돼 있다.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됐기 때문이다. 법과 제도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효력이 있다. 박 대표는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제도 이야기, 유엔장애인권리협약과 같은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행동에 힘을 실어주고 변화를 가능케 했다. 편의시설을 지으며 문턱을 없애지 않는 가게들에게 항의하며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근거로 들며 공문을 보내고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넣겠다고 말했다. 결국 많은 가게의 문턱이 사라졌다.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사회에서 약자를 보호하는 제도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된다.

    법은 금지하고 처벌하는 식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법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유도하는 ‘교육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음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10년이다,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변화보다는 더디지만, 이 권리 기본법은 차별의 확인에 기여하였고 차별받는 소수자집단에게 손에 잡히는 구제수단을 제공하였다.

    류민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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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소수자#연대

    당당하게 ‘나’로 살아가기

    …나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은 자존감을 회복하는 소중한 경험이 된다.

    ‘왜 퀴어들은 항상 어두운 바나 클럽에서만 모여야 할까?’

    박철희씨(30)가 가진 작은 의문에서 햇빛서점은 싹을 틔웠다. 국내 최초의 LGBT 서점인 햇빛서점은 2015년 서울 이태원 골목 한켠에 자리잡았다. 각종 퀴어 관련 행사의 팸플릿부터 도서, 동화책, 화보집 등 다양한 퀴어 관련 물품이 5평 남짓한 공간에 아기자기 놓였다.

    이듬해엔 강연, 전시 등을 진행하기 위해 인근에 ‘프레클즈(freckles·주근깨)’란 공간도 문을 열었다. “햇빛 아래에서 활동을 하면 자연스럽게 주근깨를 얻듯, 퀴어들이 활동을 하며 결과를 만들어가는 공간”이란 의미다. 올해부턴 ‘햇빛학교’란 연속 강좌를 시작해 퀴어 문화축제(퀴어 퍼레이드)를 앞두고 ‘퀴퍼에 입고나갈 옷 제작, 메이크업 강좌’ 등을 진행하기도 했다. 박씨도 2년 간 드랙퀸(여장남성)으로 분장해 퀴퍼에 참가했다. 그는 “제게 있어 퀴퍼는 1년 중 즐거운 날의 하나일 뿐”이라며 “평소엔 드러내기 힘든 나의 정체성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말했다.

    게이 잡지 <뒤로(DUIRO)>를 제작하고 있는 박씨의 파트너 이더즌씨(32)는 “대낮 대도시의 차 없는 넓은 도로를 가족들과 함께 막힘 없이 걸어보는 경험은 실제 성소수자들이 ‘프라이드’를 회복하는 중요한 경험”이라며 “정체성에 의문을 느끼는 사람이 이태원의 클럽에 혼자 들어가긴 힘들겠지만 퀴퍼엔 자연스럽게 참가할 수 있다. 햇빛서점도 그런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퀴어축제를 자긍심 축제(pride festivals)라고도 부르는 이유. 큰 축제는 1년에 한 번 뿐이지만, 정체성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작은 축제가 일상화되어야 한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

    받아치기는 그 차별받는 소수자 집단에게 표현의 자유와 고유의 공간이 보장될 때 가능하다. 함께할 수 있는 공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창작자들의 존재는 소중하다.

    류민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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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혐오대응법 이미지 혐오대응법 이미지

    …역사가 바뀔 때 모든 것을 인류애에만 기대진 않았다. 노예제도가 폐지된 건 노예제를 법으로 금지했기 때문이다.

    #성평등#제도

    들끓는 혐오, 제도로 견제한다

    “…예전에 홍대 길거리를 걸어가는데 어떤 남자분이 집요하게 쫓아와서 ‘따라오지 마세요’라고 말했던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러자 ‘거짓말 마라. 너같이 뚱뚱하고 못생긴 게 그럴 리가 없다’고 집요하게 악성 댓글을 달던 사람이 있었다. ‘남편도 있을 리가 없다’고 하는데 사실 그때 남편한테 가던 길이었다. 참다 못해 형사 고발 처리를 하니 갑자기 태도를 바꿔 반성하는 모습을 보고 씁쓸했다.”

    플러스사이즈 모델 김지양씨(31)의 경험담이다.

    그는 “모든 혐오를 완전히 없앨 수 있다곤 생각지 않는다. 다만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역사가 바뀔 때 모든 것을 인류애에만 기대진 않았다. 노예제도가 폐지된 건 노예제를 법으로 금지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혐오표현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법으로 규정되면, 사람들의 인식도 점차 혐오는 나쁜 것, 문화시민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고 바뀌어 가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혐오에 반대한다는 입장이 책임있는 정치적 지도자의 입을 통해서도, 공식 문서를 통해서도 제대로 확인된 바 있었던가? 혐오표현에 관한 공적 개입은 우리 공동체의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서, 혐오표현에 맞선 시민사회의 대항을 지지하는 배후를 마련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

    사법적 조치의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대응의 시작은 금지되는 표현의 공적인 확인을 통한 비난이고, 그 수단은 법적 규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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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평등#교육#제도

    학교, 혐오에 대항담론을 만들 수 있는 공간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모두 활용해 혐오표현에 맞서고 있는 교사와 학생들을 지원해야 한다.

    경기 부천남중 교사 이용석씨(47)는 학교 현장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혐오표현을 할 경우 “‘다시 말해봐, 말뜻이 뭔지 아니까 말 못하는 거 아냐? 왜? 센 척하려고?’ 이런 식으로 생각의 근본을 건드리려 한다”고 말한다. 무시당했다는 기분이 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학생들이 그와 만나는 시간은 수업시간 뿐이고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또래들과 보내고, 집에 가선 1인 BJ방송을 비롯한 기타 미디어와 보낸다.”

    그는 “교실에서 쓰는 단어를 그대로 가져와서 노출시키고, ‘우리’의 언어로 아이들과 이야기하며 성찰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혐오언어를 욕으로 쓸 때 무조건 제지만 하면 그 애는 소위 ‘쎈 애’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학교는 혐오표현에 취약하면서도, 동시에 대항담론이 형성될 수 있는 공간이다. 성찰과 토론의 과정을 통해 혐오표현에 대한 내성을 키울 수 있다.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을 모두 활용하여 학교현장에서 혐오표현에 맞서고 있는 교사와 학생들을 지원해야 한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

    아직 인터넷 문해 능력이 발달하지 않은 아동 청소년들은 다양한 뉴미디어를 통하여 차별선동, 혐오표현, 가짜뉴스를 접한다. 디지털 문해교육, 디지털 시민성 교육 등 뉴 미디어에 맞는 대책과 대항이 필요하다. 이러한 표현의 매개자가 된 인터넷중개자들은 적극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 해야 한다.

    류민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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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대’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교육#장애인#연대

    사람은 누구나 소수자성을 갖고 있다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의 조미경 소장(42)은 ‘선의’도 혐오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동정과 시혜로 인한 대상화가 일상에서의 차별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은 누구나 소수자성을 갖고 있다. 비장애인이지만 학력이 낮을 수 있고, 남성이지만 사회적 지위가 낮을 수 있다. 그럼에도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팽배해 있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낀다”면서 “정상과 비정상을 끊임없이 가르는 사회적 구조, 인식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성별·장애·성적지향·나이 등 내 안에 공존하는 다양성이 있고 그중 사회적 권력 구조에서 낮은 위치에 놓인 소수자성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게 필요하다. 누군가를 타자화하는 것에 대해 경계심을 가져야 모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존중받고 안전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발할 수 있는 용기는 주변에서의 지지를 예상할 수 있을 때 나온다. 모든 측면에서 완전히 ‘주류자’인 사람은 없고, 모두가 어떤 면에서는 소수자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연대’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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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사람의 인권과 노동권은
    지켜져야 한다.

    #교육#이주민#연대

    국가나 피부색이 다르다고 인권이 다른 게 아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50)은 한국에서 19년을 살았다.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한 경험이 적지 않다.

    그는 “그냥 넘어갈 때도 있고, 그 자리에서 ‘왜 이렇게 무시하나. 이러면 안된다’고 따지고 다툰 경우도 있다”면서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따지기보다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힘도 약하고 언어도 서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사회가 이주민들의 기본권을 인정하고, “피부색은 다르지만 똑같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자리잡히면 좋겠다”고 밝혔다.

    ‘대항’으로 작게라도 변화를 만들어낸 경험은 차별받는 개인과 집단이 혐오에 대응하는 역랑을 키워줄 수 있다.

    류민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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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배려’보다는 ‘지지’이다. 누군가를 배려한다는 것은 동등한 위치에서가 아니라‘위해서’ 하는 일일 뿐이다.

    #교육#성소수자#연대

    쉽게 ‘배려한다’ 말하지 말기

    양은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대표(40)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를 없애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배려’보다는 ‘지지’라고 말한다.

    “…성소수자나 장애인, 소수자로 분류된 사람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까란 질문을 많이 받는데, 우리는 쉽게 ‘배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배려한다는 것은 동등한 위치에서가 아니라 ‘위해서’ 하는 일이 된다. 성소수자 인권이 보호되기 위해서는 주변의 친구·가족, 그리고 우리 사회 구성원이 함께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가시화되지 않은 성소수자의 존재는 더욱 취약하다. 혐오표현은 그들을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해 버리며 생채기를 낸다. 당사자건 아니건, 당사자가 있건없건, 언제 어디서나 혐오와 맞서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

    혐오표현이 부당하며 이에 대항해야겠다 생각을 하는 개인은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을 파편화되지 않게 묶어주고 서로를 확인하며 대항방법을 모색하는 캠페인, 이니셔티브가 다양한 주체에 의해 시도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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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대

    온라인 혐오 언어에 맞서 싸우기

    …인터넷에서 ‘과소대표’된 목소리를 대변하며 더 이상 침묵하지 않기.

    네 살 아이의 엄마 김정덕씨(38)는 온라인 공간에서 ‘맘충’같은 무차별적 혐오표현을 접하면 반박하기 위해 노력한다. “‘저 사람들은 어쩔 수 없어’라고 무시하면 쌓이는 댓글들이 혐오하는 사람들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가 미래라고 하지만 난 우리가 미래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어린 사람,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모두 같은 땅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사는 존재라는 걸 알 수 있는 교육”, 그러니까 “성평등 교육과 인권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초기 민주적 유토피아나 법으로부터 자유로운 ‘거친 서부’로 판타지화되었던 인터넷은 이제 소수자 개인과 집단에게 잔인한 공간이 되었고 특히 상당히 젠더화되었다. 소수자는 인터넷이라는 공적 영역에서도 참여를 제한당하고 침묵을 강요당한다. 인터넷에서 과소대표된 목소리를 대변하고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는 태도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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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평등#교육#연대

    침묵하지 않고 소리내어 말하기

    “…내가 더 나이가 어리다고, 더 낮은 직급이라고, 사회에서 약자라고 목소리를 못 내는 일은 없어야 하잖아요 우리 모두에겐 경청의 자세가 필요해요.”

    독자 박창희

    “안녕하세요. 저는 박창희라고 합니다. 제가 겪었던 일이 혐오에 맞서고 계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쉼’을 줄 수 있었음 좋겠단 바램으로 #힘이_세지는_혐오대응법 에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17살인 지금도 다른 이들에게 내 입장을 말하고 표현하는 데 참 서툴러요. 하지만 페미니스트로 살겠다는 결심이 저를 바꾸었어요.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전에는 ‘여자라서’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하는 성역할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몰랐어요. 그게 제 가능성을 제한하고, 저를 억압하는 폭력이라는 사실을요. 내 몸에 가해지는 여러 코르셋, 여성을 비하하는 말들, 이주여성의 삶, 성노동자의 삶, 우리 엄마의 삶, 아내에게 막 대하는 남편들, 내 친구의 남자친구가 하는 폭력적인 말들에 대해 지금처럼 깊이 고민하고, 얘기를 꺼내지 않았어요. 중학교 때 반 애들이 ‘기모찌’ 그리고 ‘니 엄마 창녀’같이 남을 깎아내리는 말이나 인신공격, 누군가를 배제시키는 말들을 정말 많이 했어요. 전 맞설 생각을 못했죠. 내가 정말 약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어요. 하지만 지금의 전 “저 말 지금 너무 불쾌해” “전혀 재밌지 않아”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요. 제 친구, 우리 엄마, 언니, 할머니 그리고 책 속에서 또 여러 매체에서 만나는 많은 여성들을 생각해요.

    제게 최근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 말해보려고 해요. 집 근처 학원에서 원장님한테 수업을 들었는데, 같은 반에 저 빼고 모두 남자애들이었어요. 소위 “남자들끼리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 같았고 자기들끼리 웃었어요. 수업 시간에 ‘야동’으로 비유를 드는 선생님, 입실론을 듣고 갑자기 수업시간에 큰 목소리로 룸살롱을 외치는 아이와 그 말을 듣고 “나도 한번도 안 가봤네 가보면 좋을텐데” 라고 맞장구 치는 선생님,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보지”라는 말을 하셨는데 뒤에 보지만 들렸는지 자꾸 보지 보지 거리는 아이들, 어찌할 바를 몰라 얼굴이 새빨개진 나를 보며 웃는 선생님, 그 수업이 끝난 후에 선생님 한테 자꾸 ‘로리콘’이라고 하는 아이…. 알수 없는 찝찝함과 불편함 속에 수업을 들어야 했어요.

    더 이상 그런 상황을 견디고 싶지 않았어요. 학원에 앞으로 나오지 않겠다고 하니까 선생님이 왜냐고 묻길래 저는 솔직하게 ‘사소하지 않은 일들’을 다 말했어요. 정말 화가 났거든요.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선생님이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할 순 없었어요.

    하지만 말을 할수록 더 지치는 느낌이었어요. 저더러 “그건 피해의식 아냐?”라고 하시는데 너무 놀라고 어이가 없어서 크게 웃었어요. “너 젠더 들어 본 적 있니?” “역차별이라고 알아?” 라고 말하실 때 더 화가 났어요. 제 얘기를 듣기는커녕 선생님은 절 가르치려 했을 뿐이죠.

    이제 학원에서 그 꼴들을 안봐도 돼서 정말 좋지만, 같이 수업듣는 애들은 안 바뀔거라고 생각해요. 수업시간에 제가 들었던 말들과 정체모를 신음소리는 성희롱이었어요. 걔네는 정말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했어요. 폭력적인 말을 하고 서로를 상처입히면서도 말이죠. 걔네는 다른 약한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혐오발언을 하겠지만 사실 아니잖아요. 세상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그 애들이 안타까워요. 저는 내가 화났다는 걸 더 잘 알려야 했어요.

    여러 가지 후회도 남지만, 하고 싶은 말을 당당하게 한 제 자신이 자랑스러워요. <엄마는 페미니스트>라는 책에서 “너를 불편하게 만드는 게 하나라도 있다면 소리 내어 말하라고, 외치라고 가르쳐” 또 “그러니까 치잘룸에게 남들의 호감을 사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대신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 그리고 친절한 사람이 되라고. 용감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 자기 의견을 말하도록, 진짜 생각을 말하도록 격려해줘”라는 글을 읽었을 때 나를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것 같은 느낌에 울컥했어요. 또 행복했어요.

    나보다 어른인 사람에게 잘못을 지적하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걸 말하기란 정말 어려워요. 하지만 내가 더 나이가 어리다고, 더 낮은 직급이라고, 사회에서 약자라고 목소리를 못 내는 일은 없어야 하잖아요. 우리 모두에겐 경청의 자세가 필요한 것 같아요. 말을 막지 마세요. 윽박지르지 마세요. 말을 제대로 들어주세요. 나이가 어리다고 편견을 가지고 눈을 닫고 귀를 닫지 말고 진지하게 들어주세요.

    내가 말을 하고 싶어도 목에서 소리가 나오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리고, 무척 힘들 수도 있어요. 천천히 해도 된다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자신의 무한함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할 기쁜 날이 꼭 올거에요. 마지막으로 스티븐 유니버스라는 애니메이션에서 스티븐이 부른 노래 일부분을 인용해 제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내가 되고 싶은건 거대한 여인을 본 사람이네’ ‘내가 원하는 건 네가 거대한 여인으로 변하는 걸 보는거지’..

    성장기는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특히 여성 청소년으로 자라나는 것 또한 소수자성에 기반한 중첩적인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일상적으로 겪는 성차별적 표현과 성희롱에 대해 “나는 그 때 소리를 왜 못 질렀을까?”에서 “이제 입 다물고 소리 못 내는 일은 안 만들거에요.”라고 선언한다.

    이 용감한 성장의 길에 좋은 친구, 동료들이 필요하다. 다행히 응모자는 지지해주는 목소리를 대중문화에서 찾았다. 벡델 테스트(1. 이름을 가진 여성이 2명 이상 나오는가 2. 이들이 서로 대화하는가 3. 대화 주제로 남자에 관한 게 아닌 내용이 나오는가)를 훌륭히 통과할 듯한 애니메이션 ‘스티븐 유니버스’가 그것이다. 스티븐 유니버스는 미국 카툰네트워크에서는 최초로 여성 제작자 단독으로 시작된 애니메이션이다.

    전문가들은 혐오표현에 대한 대응이 활발해질 수 있는 선결조건이자 토양의 하나로 ‘미디어의 다양성’을 들기도 한다. 이제 주류적인 미국 영화 산업의 히트작에서도 여성 대표성, 성차별에 대한 감각과 목소리가 느껴질 정도로 성평등은 ‘기본’이 되었다. 자라는 여아와 여성청소년이 대중문화 안에서 다양한 역할 모델과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류민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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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대#제도

    피해자에게 잘못을 전가하지 않기

    혐오에 대응하는 소수자들에게 현실적인 불이익을 감당하라고 강요하는 건 또다른 폭력이다.

    독자 이광호

    스무 살부터 콜센터 알바를 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당시 최저임금은 4000원 초반대였는데 콜센터 기본 시급은 7000원이었다. 인센티브까지 받으면 만원 가까이 됐다. 주말에만 일하고도 60만 원 가까운 돈이 꼬박꼬박 통장으로 들어왔다. 큰 기업이라 그런지 월급이 밀리는 일 없이 칼같이 들어왔고, 휴게실에는 안마의자와 수면실도 있었다. 춥고 더운 날 실내에서 일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이 좋은 일을 왜 다들 마다하나 싶었다.

    그것도 잠시. 일부 악성 고객들은 인격 모욕을 서슴지 않았다. ‘할 줄 아는 거 없으니깐 상담사나 하고 있는 거 아니냐’, 고 비아냥거리는 건 기본이고, 몇 시간씩 전화를 끊지 않고 기다리게 만들기도 했다. 내 이름과 회사 주소를 불러가며 당장 찾아가서 죽여버리겠다는 협박도 일삼았다. 그런 일이 있는 날은 친구를 만나도, 맛있는 걸 먹어도 즐겁지가 않았다. 이유 없이 욕을 먹고도 ‘죄송합니다’라는 말 밖에 반복할 수 없는 스스로가 너무나 한심했고, 이 일을 선택한 내 잘못처럼 느껴졌다.

    스물다섯. 지금도 전화 받는 일을 한다. 하지만 이젠 깨달았다. 그건 혐오라는 걸 말이다. 상담사가 약자라는 이유로 업무와 관계없는 인격모독이나 욕설을 하는 건 그 사람의 잘못이다. 내 스스로를 탓할 이유가 없다. 다짜고짜 욕을 하거나 성희롱을 일정 횟수 이상 반복하는 고객에게는 경고 후 상담을 먼저 종료할 수 있는 등의 상담사의 최소한의 인권을 보호하는 제도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도 사회적으로도 공감대가 생기고 있다는 방증이다.

    물론 실제 상담 중 통화를 먼저 종료하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다. 지금도 대부분의 상담사들은 온갖 욕설과 혐오 발언에 ‘죄송합니다’로 대응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그러니깐 왜 그런 일을 해서 고생이야?’라던 반응이 ‘아직도 몰상식하게 욕 하는 사람이 있어?’ 로 바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느낌이 달라졌다. 혐오라는 걸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혐오가 만든 상처를 스스로 헤뒤집으며 아파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혐오에 대응하기 위해 ‘NO!’라고 외칠 수 있는 피해자의 용기만을 기다리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안타깝게도 이 세상에 슈퍼맨, 배트맨 같은 히어로들은 없기 때문이다. 우린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고, 특히나 먹고 사는 문제가 걸리면 혐오인 걸 알면서도 NO라고 말하기 쉽지 않다. 용기 뒤에는 현실적인 불이익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걸 홀로 감당해내라고 강요하는 건 또 다른 폭력일지 모른다.

    그러므로 이제는‘그건 혐오야’ 라고 말해주길 바란다.

    피해자에게 잘못을 전가하지 않는 사회, 내 잘못이 아닌가 자학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혐오의 화살이 만든 상처를 다른 이들이 보듬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내겐 별 거 아닌 한 마디가 누군가에겐 큰 용기가 필요한 한 마디일 수 있다는 것, 반대로 별 생각 안 하고 던진 한 마디가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걸 명심하자.

    콜센터 상담사에 대한 혐오표현은 상담사의 취약한 지위를 이용한 아주 저열한 인권침해다. 고객 서비스라고 해서 상담사가 혐오표현을 감내해야할 이유는 전혀 없다. 상담사의 맞대응, 즉 전화를 끊을 권리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마땅하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

    직업적으로 고객으로부터 인격권 침해 수준의 언어폭력적 표현을 감내해야 했던 분의 글이다. 이것은 사실 대인서비스노동에서의 업무상 위험에서 직원을 보호하지 않은 조직의 책임이 크다. 또한 조직은 대응책으로 무조건인 사과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지침을 제시하여 직원에게 무기력감을 느끼지 않도록 했어야 했다. 이제 산업보건의 차원에서 육체적 건강 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도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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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평등#성소수자#이주민#제도

    일본의 ‘헤이트스피치 해소법’을 벤치마킹하자

    “…일각에는 일반의 인식 변화와 동의가 선행되어야만 법이 제정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그러나 사회를 진보시키는 대부분의 입법은 이러한 인식 변화를 전제로 태동한 것이 아니다.”

    익명의 독자

    이주민방송(MWTV) 정혜실 대표는 한국 사회에 혐오와 차별이 만연한 이유를 “혐오와 차별의 정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고, 이를 규제하는 법령 역시 구체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법 제정을 통해 혐오와 차별에 관해 합의된 정의를 도출하고, 처벌의 기준도 제시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성소수자 문제 등이 포함되며 사회각층에 의견 대립이 생겼다. 이로 인해 현재, 법안 제정은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법안이 교착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우리가 주목해 볼만한 것은 일본의 ‘헤이트스피치 해소법’ 제정 사례다. <노 헤이트 스피치>의 저자 간바라 하지메는 헤이트 스피치를 “인종과 민족, 성적 지향 등을 기준으로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증오·차별을 부추기는 언동이다”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는 한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혐오발언’과 같은 의미가 된다. 혐오발언을 금지하자는 법안이 한국에서는 답보상황인데 일본에서는 제정·시행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무슨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까?

    지난 8월, 부천시의회에서 주최한 ‘혐오표현 대응전략 토론회’에 참여한 김창호 변호사는 일본의 ‘헤이트스피치 해소법’ 제정 과정을 소개했다. 그의 발언 중 주목해 볼 만한 것은 헤이트스피치 해소법이 제정되기 이전에 있었던 일본 지자체의 움직임이다. 헤이트 스피치와 관련된 일본 지자체의 행보는 크게 두 가지 부분에서 주목할 만하다.

    첫번째는 헤이트 스피치 금지 법안을 국회에 제정할 것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지방의회에서 지속적으로 채택했다는 점이다. 일본의 행정구역 편제는 47군데의 도도부현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 혐오표현 반대 의견서를 채택한 곳이 절반을 넘었다. 지방 주요 거점 의회에서 올라오는 헤이트 스피치 금지법안 촉구 의견서는 중앙 의회를 압박하는 주요 수단으로 작동했다. 두번째는 일본 오사카시가 2016년 1월, 전국 최초로 헤이트스피치를 억제하기 위한 조례를 제정한 것이다. 조례는 지방자치단체 의회에서 제정하는 자치법규로 우리에게도 이는 같은 의미이다. 오사카시의 조례에는 헤이트 스피치를 규정하는 3가지 요건을 정하고, 이를 판단하는 심사회 구성과 후속 처벌까지를 조례로 정했다. 이를 통해, 2017년 6월 30일까지 오사카시에서는 총 4건의 헤이트 스피치가 인정되었다. 오사카시의 조례가 일본 중앙의회에서 헤이트스피치 해소법을 제정하는데 전범이 되었다는 것은 자명하다.

    우리 사회 일각에는 일반의 인식 변화와 동의가 선행되어야만 법이 제정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그러나 사회를 진보시키는 대부분의 입법은 이러한 인식 변화를 전제로 태동한 것이 아니다. 엄연히 존재했지만 처벌되지 않았던 가정폭력은 「가정폭력방지법」 시행 이후에 명확한 범죄로 인식되었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무엇이 성폭력 범죄인지를 명확히 정의하고 심리부터 처벌까지의 전 과정을 세세하게 규정했다. 이를 통해 성폭력 범죄에 대한 일반의 인식 제고와 활발한 논의가 진행중이다. 이상의 사례로 미루어 볼 때, 사회에 만연한 혐오표현이 문제라면 이를 정의하고 규제하는 법은 일반의 인식변화에 선행되어야 한다. 정혜실 대표의 지적처럼 혐오나 차별에 대한 합의된 정의가 없는 상황에서 일반이 규제법에 동의해 줄 것을 기다리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선제적으로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법을 만들고 무엇이 문제인지 사회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는 1949년 지방자치법이 제정된 이후 조금씩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지방의회의 조례제정이나 지방의회 차원의 의견서 채택으로 국회의 법 제정을 압박한 경우는 드물었다. 이런 상황에서 부천시의회의 혐오표현에 대한 조례제정 검토는 많은 가능성을 내포한다. 현실적으로 일반 시민이 국회에 법안 제정을 촉구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가능한 영역부터 접근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혐오대응법의 일환으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고려한다면 지방의회에 대한 압박부터 시작해 나갈 필요가 있다. 조례를 통해 혐오표현을 정의하고 이를 규제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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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소수자#연대

    이분법을 뛰어넘어 다양한 정체성을 존중한다

    사회적 틀에 맞지 않는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고 타인과 공유하는 것은 소수자 집단이 자신을 긍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 사회는 남·녀 이분법적 성별 구분이 기본값이다. 타고난 성별과 자신이 인식하는 성별이 다른 경우인 트랜스젠더 개념은 알려져 있지만, 성별정체성을 남·녀로 정의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젠더퀴어’는 생소한 개념이다. 미국, 호주 등 해외에서는 성별을 남성과 여성이 아닌 ‘X’로 표기하는 경우도 늘고 있지만 한국에서 ‘젠더퀴어’는 보이지 않는 존재 그 자체다.

    젠더퀴어(gender queer) 단체 ‘여행자’ 회원들은 성별에 대한 질문 자체가 고통이었다. ‘태로’(닉네임)는 “성별이라는 개념 자체에 저항심이 심했다. 태어날 때 지정받은 성별에 대한 소속감도 못 느꼈고 몸에 대한 불편감도 심했다”고 말했다. 이들에게는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절실했다. 태로는 “젠더퀴어란 단어를 듣고 그동안 언어화할 수 없었던 삶의 의문, 수수께끼가 술술 풀리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젠더퀴어는 생소한 개념이기에, 이들이 겪는 문제도 드러나지 않는다. 실제 조사 결과 트랜스젠더퀴어의 우울증 환자 비율은 동성애자 집단에 비교해도 훨씬 높은 수치지만 그 심각성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하는 일, 지위, 정체성, 나이 모두 다르지만 이들은 “나같이 이상한 사람이 있다”는 공통점을 기반으로 자신들의 다름을 긍정하고 있다. ‘헤일러’(닉네임)는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 해결됐고, 덜 고통스럽게 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쁨’(닉네임)은 “예전에는 저의 모든 것이 싫었는데, 날 긍정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며 지금은 미래도 구상하고, 꿈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여행자’는 지난해 결성 이후 정기적으로 ‘수다회’를 열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젠더퀴어로서 겪은 일과 고민을 나눈다. ‘정숙조신’(닉네임)은 “원래 내 자신을 감추고 싶었는데 ‘여행자’를 만나게 되면서 삶을 기록하고 남겨야 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혐오세력들은 ‘내 눈에 안 보이면 괜찮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맞대응은 ‘가시화’다. 드러내어 보이는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이야 말로 혐오와 차별에 맞서는 가장 급진적인 실천이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

    과거 소수자들의 대항표현을 어렵게 했던 이유 중 하나는 주류적인 공론의 장 그리고 언론에서의 과소대표성이었다. 이제 다양한 공적인 공간과 인터넷은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류민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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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소통하면 오해에 기반한 혐오는 이해와 공감으로 바뀐다.

    #교육#이주민

    혐오를 없애는 건 소통이다

    혐오는 오해에서 나온다. 일본인 야마구치 히데코씨는 “편견이나 차별이 있는 건 소통이 없어서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야마구치씨는 한국에 온 지 29년이 됐지만 아직도 크고 작은 차별과 혐오를 경험한다. “한국어 발음이 어눌하다는 이유로 어린아이 취급하며 반말을 함부로 하기도 하고, 욕설을 하는 분들도 있어요.”

    혐오에 대놓고 대응하는 건 쉽지 않았다. 혼자 속으로 삭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글을 쓰고, 시를 쓰자 외부의 반응이 있었다. 그는 일간지에 한국과 일본의 문화차이에 관한 칼럼을 연재하고, 이주민으로 겪는 어려움 등을 시로 표현했다. 야마구치씨는 “설명을 들어보니 너의 행동이 이해가 간다, 외국인을 이해할 기회를 주어서 좋았다는 반응이 많았다”며 “외국인에 대한 오해 때문에 혐오하게 된다면, 어떤 배경으로 오해가 생겨나고 이를 어떻게 풀어갈지에 대해 글을 써서 알리는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소통과 공감의 자리가 늘어나면 오해는 이해로 바뀐다. 야마구치씨는 “한국 사회에 이주민의 사정을 알리는 자리가 별로 없다”며 “이주민에 대해 알리고 소통하는 장이 늘어난다면 사람들이 이주민의 일을 자기 일로 느끼게 될 것”고 말했다.

    혐오는 오해나 잘못된 정보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이해를 한다고 언제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오해라 풀리고 혐오의 감정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된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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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못된 사실에 기반한 혐오를 줄이는데, 올바른 사실을 알리는 것은 도움이 된다.

    #교육#성소수자

    바른 정보로 혐오에 대항한다

    “어떤 의학 교과서에서도 동성애를 질병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기에 치료할 이유가 없으며, 다양성의 차원에서 받아들여져야 한다.”(최인광 정신의학박사)

    “국가가 동성애 에이즈환자에게 수천억대 예산을 퍼붓고 있다”(거짓. 2016년 기준 에이즈 환자 지원사업 예산은 23억)

    왜곡된 정보는 혐오를 낳는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를 중심으로 설립된 ‘바른정보연구소’는 지난해 6월 소책자 <우리가 알아야 할 바른 진실들>을 제작, 배포했다. 반동성애 정치인이나 단체들이 꺼내드는 왜곡된 정보, 논거들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비온뒤무지개재단 한채윤 상임이사는 “왜곡된 정보를 계속 접하다보면 사람들은 그것이 진실인 줄 알게 된다”며 “사실을 바로잡는것이 혐오하는 사람의 생각을 바꾸진 못하더라도, 잘못된 정보들 사이 고민하는 이들에게 제대로 된 판단의 근거를 줄 순 있다”고 말한다.

    바른 사실은 성소수자 당사자에게도 ‘방패’가 된다. 특히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혐오를 접하고 “어떻게 대응을 해야할지 몰라서 마음이 아팠다”(ㄱ씨·17)는 반응이 많았다. 한 이사는 “혐오의 말은 날카로워서 듣는 사람을 찌른다. 제대로된 정보는 방패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동성애에 대해선 악의적으로 왜곡된 지식들이 혐오세력에 의해 많이 유포된다. 잘못된 정보를 교정하고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혐오에 대응하는데 중요하다. 올바른 정보가 고의적으로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효과가 없을지 모르겠지만, 무지하거나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혐오에 동참하는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을 것이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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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자가 혐오에 함께 맞서면 혐오표현도 줄어든다.

    #이주민#연대

    혐오당하는 사람 편에 서서 지지해주기

    소수자로서 혐오에 맞서기는 쉽지 않다. 용기를 내서 맞서더라도 상대방에게 오히려 공격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변에서 누군가 힘을 실어주고, 함께 목소리를 내 준다면 결과는 달라진다. 혐오를 하는 사람이 오히려 ‘소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베트남에서 온 김성연(33·가명)는 10년 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한국으로 이주했다. 이름도 한국식으로 바꿨지만,‘결혼 이주여성’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혐오를 피해갈 수 없었다. 시장에서 “외국인에게는 과일을 팔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면전에 대고 “돈 때문에 한국 남자랑 결혼해서 산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김씨의 다른 친구는 아이가 학교에서 응급실을 다녀올 정도로 많이 다쳤지만 연락조차 받지 못했다. 김씨는 “선생님이 ‘외국인이라서 말을 못 하니까 연락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친구는 남편이 집을 나가자 시어머니가 남편이 나간 이유를 쪽지에 적어줬다. 쪽지엔 “하루에 한 번은 성관계를 해줘야 남편이 돌아온다. 아니면 니 고향으로 돌아라가”고 써 있었다. 친구는 “나 어떡해”라며 울었다.

    김씨는 부당한 말을 듣고도 따지지 못하고 참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이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씨는 “막말을 하는 사람들이 ‘아 얘들한테는 아무말이나 막 해도 되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제 나도 한국에 온 지 오래돼 바로 반박한다”고 말했다.

    최근 한 모임에서 참석자가 “왜 베트남 여성들이 나이 많은 한국 남자랑 결혼하느냐. 돈 때문에 시집오는거 아니냐”고 말을 했다. 김씨는 “베트남 사람이든 한국 사람이든 다 똑같다. 돈 때문에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며 “한국 사람과 결혼해서 열심히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도 있는데 모두가 돈 때문에 결혼했다고 말 하면 안된다”고 받아쳤다. 그랬더니 주변 사람들이 동조했고, 그 발언을 한 사람으로부터 사과받을 수 있었다.

    김씨는 “주변에서 나의 말에 동의해주고 격려해주면 힘이 난다. 내가 혐오표현을 들을 때 주변에서 누군가 한 명이라도 동조를 하고, 적극적으로 도와준다면 혐오표현을 하는 사람들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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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 늘어야 한다.

    #장애인#연대

    더불어 지낼 때 혐오도 사라진다

    뇌병변 장애를 갖고 있는 김모씨(45)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도 쉽지 않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식당을 찾으면 뻔히 빈 자리가 보여도 “예약됐다”며 입구를 막는 가게 주인도 있었다. 버스를 타는 것도 쉽지 않아서 연거푸 버스를 놓치고 1시간 넘게 기다린 적도 있다. 어렵게 버스를 타도 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유로 “병신”이라고 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중교통, 식당 등 일상적 생활공간 모두 김씨에게는 적대적이었다. 심한 혐오표현을 들었을 땐 심리적 타격이 컸다. 며칠동안 자꾸 떠올라 입맛이 없어져 밥을 굶기도 했다.

    하지만 장애인이 많은 곳에 가면 달랐다. 김씨는 “장애인이 자주 가는 곳에는 배려가 있다. 장애인들이 자주 찾는 식당에서는 직원이 친절하게 도와주고 가게 공간도 넓어서 전동 휠체어가 들어갈 자리가 넉넉하다”며 “휠체어가 들어가려면 테이블 간 간격이 넓고 문턱도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장애인을 특별한 사람 취급하고, 주변에서 장애인을 잘 볼 수 없으니까 혐오가 생긴다”며 “장애인을 일상생활에서 더 자주 보고, 생활해야 한다. 그래야 이해도가 높아지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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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평등#연대

    혐오로 인해 누군가가 배제되는 일에 동참하지 않는다

    제3자로서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한다.

    “ ‘혐오를 멈추라’고 말하지 않으면 혐오발언을 유희로 다루고, 혐오로 인해 누군가가 공동체로부터 배제되는 일에 동참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해 서울의 한 대학에 ‘단톡방 성희롱’을 고발하는 대자보가 나붙였다. 한 학과의 ‘남톡방’(남성들로만 이뤄진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사진)에서 “첫 만남에 강간해버려” “여자 주문할게 배달 좀” 등의 대화가 오가고, 실제 여학생들을 품평하며 성희롱한 사실이 알려지며 공론화됐다. 그 무렵 다른 대학에도 ‘단톡방 성희롱’ 고발이 이어지면서 단체 대화방의 성폭력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뤄졌다.

    경향신문은 대자보를 쓴 김수현씨(가명)와 e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내부고발자’가 되기로 한 이유, 고발 이후 공동체 안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대화방에서 어떤 발언들이 오갔나.“게임·축구·학과생활과 같은 일상적 대화, 그리고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남성끼리만 있다면 할 수 있는 얘기들이 과시적으로 이뤄지면서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맥락 없이 여자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섹스하고 싶다’와 같은 말들이 오갔다. 점점 수위가 높아지면서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고발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처음엔 침묵하거나 화제를 돌리려고 했다. 대화방에서 반박할 경우 ‘혼자 잘난 척하네’ 같은 반응으로 끝날까봐 주저했다. 내가 없는 단톡방을 만들고 그곳에서 변함없이 성희롱이 오갈 것이라 생각하면 끔찍했다. 학교에서 계속 봐야 할 사람들인데, 더 이상 못 본 척하고 싶지 않았다. 단톡방을 멀리 하다가 오랜만에 들어가 봤더니 대화 내용이 생각보다 심각했고, 고발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 고발 이후 학우들의 반응은 어땠나.“크게 세 부류였다. ‘사소한 일인데 무슨 문제냐’는 것, ‘문제가 있긴 한데 왜 공개하냐’ ‘우리 남톡방은 잘 숨기자’는 반응이었다. 타인의 아픔을 ‘사소한 일’이라고 간단히 넘겨버릴 수 있다는 사실에 슬프면서도 화가 났고, 한국 사회에 이런 대화들이 일상적으로 넘쳐난다고 생각하니 갑갑했다.”

    - 고발 이후 공동체 내부의 변화가 있었나.“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현재 시점에서 말하면 ‘지워지고’ 있는 것 같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반성하기보단 아무 일 없다는 듯 행동하며, 피해자들이 상처를 감내하는 상황이다. 공론화를 결심했을 때부터 방법을 수없이 고민했지만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돌아보게 된다.”

    - 혐오를 당한 당사자가 아닌 ‘제3자’로서 목소리를 낸 이유는.“혐오발언으로 누군가가 상처받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타인을 향한 혐오에 동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아무 죄책감 없이 상처를 주는 일이 없으려면, 스스로 예민하게 살피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 대다수가 침묵과 방관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남성의 경우 ‘남성성’을 과시하는 행동에 동참하지 않으면 남성 공동체에서 소외되기 쉽다. 우리는 개인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지 않고 ‘보편적인 남성상’에 우겨넣어 행동하길 강요하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 ‘남성문화’ 안에서 자신이 겪는 억압을 돌아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타인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혐오발언에 대해 ‘쓴소리’를 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혐오발언을 하는 사람이 오히려 눈치를 봐야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지치지 않고 끝없이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 단호하게 ‘싫다’고 말하고 행동해야 사소하게 여겼던 문제를 직시할 수 있다.”

    - 한국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한국 사회에선 차별을 이해하기보단 ‘역차별’을 주장하고, 평등한 관계보다는 수직적인 관계에 적응하는 것이 익숙하다. 평등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타인과 대화하고 이해하려 하기보다 자신의 권력우위를 누리면서 타인에 대해 사유하지 않는 게으름에 익숙하다. 그 ‘익숙함’에 견디기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의지가 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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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별이나 혐오표현을 듣고 가만 있으면 나 역시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이주민#연대#제도

    일본 시민사회가 ‘헤이트스피치 해소법’ 제정을 이끈 이유

    “조선인은 죽어라!” “바퀴벌레 조선인을 일본에서 쫓아내라!”

    일본에서 재특회(재일한국인의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를 중심으로 한 혐한 세력이 내뱉은 ‘헤이트스피치’다. 헤이트스피치는 소수자에 대한 증오·차별을 부추기는 언동을 뜻한다. 도쿄·오사카를 시작으로 일본 전역에서 헤이트스피치가 이어지자 이에 맞서는 일본 시민들의 대항 시위도 확산됐다.

    재일조선인이 많이 살고 있는 가와사키(川崎)시의 사쿠라모토(櫻本)에서도 2015년 11월 헤이트스피치가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이날 혐한 세력은 사쿠라모토로 갈 수 없었다. 시민 500여명이 모여 길을 막았기 때문이다. 이듬해 1월에는 1000명의 시민이 모였다. 헤이트스피치에 맞선 일본 시민들의 행동은 지난해 5월 ‘헤이트스피치 해소법’ 제정으로 이어지는 성과를 낳았다.

    지난 10월 18일 ‘2017 서울인권컨퍼런스’ 참석을 위해 방한한 야마다 다카오(山田貴夫·68) ‘헤이트스피치를 용서하지 않는 가와사키 시민네트워크’ 사무국장을 만났다. 그는 “차별이나 혐오표현을 듣고 가만 있으면 나 역시 가해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시민들의 연대 동력은 무엇인가.“박해받는 소수를 외면하면 우리도 가해자라는 인식을 공유했다. 가와사키시는 40년 이상 재일조선인 차별 반대운동을 해서 ‘일본인·조선인은 모두 같다’는 인식이 있다.”

    - 사회 구성원이 연대해 헤이트스피치에 대항해야 하는 이유는.“차별을 만드는 사회는 차별의 대상을 너무 쉽게 바꿀 수 있다. 지금 재일조선인을 향한 헤이트스피치가 이뤄지지만, 언젠가는 여성, 장애인에 대한 혐오로 변할 수 있다. 혐오는 나쁜 방향으로 확대되어 가는 성질이 있다.”

    -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왜 가해자가 되는가.“헤이트스피치를 하는 사람은 소수고 대부분은 침묵하는 다수다. 다수의 사람들이 침묵하면 피해자를 못 본 척하는 것일 뿐 아니라 가해자의 등을 밀어주는 것이다.”

    - 헤이트스피치 현장에서 어떻게 활동했나.“그 사람들도 삶 속에 불만들이 쌓여서 폭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의 모순이 만들어낸 또 다른 피해자이기에 비난 대신 ‘함께하자’ ‘같이 살자’는 말을 건넨다.”

    - 시민들의 연대가 제도적 개선으로 이어졌다.“ ‘헤이트스피치 해소법’ 제정을 위한 활동에 동참했고 현재는 가와사키시에 ‘인종차별 철폐조례’를 제정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는 ‘헤이트스피치 해소법’과 관해 여러 가지 테마로 학습회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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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박스’를 벗어나면 더 많은 세상이 보인다

    #성소수자#연대

    내 편견을 깨고 경계를 흔드는 사람들을 통해 성장한다

    두 아이의 엄마인 김지혜씨(41·사진)는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이들을 일컫는 ‘앨라이(ally)’로 활동하고 있다. 성소수자 인권단체 비온뒤무지개재단의 ‘나는 앨라이입니다’ 캠페인의 첫 번째 모델이다. 중증 아토피 피부염을 앓았던 둘째 아이에게 쏟아졌던 차가운 시선을 경험했던 김씨는 “아이의 흉터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줄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며 참여했다”고 말했다.

    - 혐오를 받아 본 경험이 있나.“어린 시절 뜨거운 물에 빠져 가슴 아래부터 무릎 위까지 3도 화상을 입었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목욕탕만 가면 ‘여자애가 그 몸으로 어떻게 살지’라고 말하는 듯한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다. 흑인·백인종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피부색으로 사람을 판단한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아직 차별이라는 단어를 몰랐을 때였지만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 아이도 혐오를 겪었나.“둘째가 아토피 피부염을 심하게 앓았다. 한 번은 어떤 아이가 ‘더러워’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이가 아픈 건 그냥 일어난 일인데 다 내 죄 같았다. 내 화상 흉터와 내 아이의 아토피 흉터를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마을 공동체 활동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성소수자 친구를 사귀게 됐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내가 성장하는 걸 경험했기 때문에 그 친구들을 만나게 된 걸 감사하게 생각했다. 비온뒤무지개재단에서 일하는 친구가 ‘앨라이 모델’ 제안을 해왔다. 난 너무 평범한 것 같아 고민이 됐지만, 유명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지지하는 게 더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심각한데.“사람들이 점점 자신의 ‘박스’에 갇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장애인을 만나고 싶어도 못 만난다. 사회가 장애인에게 이동할 자유를 주지 않았으니까. 이렇게 차별적인 구조에 갇혀 있다 보면 내가 혐오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된다. 혐오조차 ‘다양성’으로 포장되는 걸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낀다. 혐오할 자유라는 말은 무지에서 나온 말이다.”

    - 혐오를 없애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여행할 때 짧은 시간 내에 다양한 경험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 않나. 그런 마음으로 일상을 여행하면 좋겠다. 문을 열고 나가면 장애인, 이주민, 성소수자 등 다양한 소수자들이 있다. 내 편견을 깨고 경계를 흔드는 사람들을 통해 내가 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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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제도

    차별금지법은 우리 모두를 위한 법

    혐오를 없애기 위해서는 차별을 금지하고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혐오와 차별은 쌍둥이다. 많은 혐오가 차별적 구조에서 싹트고 있고 혐오가 차별을 공고화한다.”

    조혜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말한다. 전문가들은 혐오를 없애기 위해서는 차별을 금지하고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해외 선진국들은 관련 법규를 갖추고 있다. 제노사이드(집단학살)의 아픈 역사를 갖고 있는 유럽연합은 인종·종교·민족과 관련된 특정 집단에 대해 공개적으로 폭력과 증오를 선동할 경우 형법상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하고 있다. 독일은 혐오표현과 같은 차별적 괴롭힘을 금지하고, 국적·인종·종교 등을 이유로 한 증오선동에 대해서는 3개월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다.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미국은 혐오표현을 규제하는데 소극적이지만, 고용 영역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혐오표현에는 엄격하게 대처한다. 인종·피부색·성별·성적지향·임신여부를 이유로 욕설·놀림·불쾌한 농담 등을 할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능토록 강력 규제하고 있다.

    반면 아직까지 한국에는 무엇이 차별에 해당되는지에 대한 기준이나 합의가 없다. 한국에서도 인종·종교·장애여부·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한 포괄적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을 만드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10년째 ‘나중에’라는 말을 들으며 유예되고 있다. ‘성적지향·이주민’ 등을 차별금지 사유에 넣는 것에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보수단체가 반대하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은 국가인권위 권고로 2007년 법무부가 입법예고 했지만, 보수단체들이 ‘동성애 합법화’라며 강하게 반발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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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좋은 규제는 ‘혐오표현이 사회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여건’을 만드는 것이다.

    #교육#제도

    인권교육으로 오늘과 미래를 바꾼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대 교수는 국가가 혐오에 대항하는 당사자와 제3자의 힘을 길러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지지하는 규제’라고 부른다. 정부가 권고·자문·교육·홍보 등을 통해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시민들을 적극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시민사회에서 자율적 노력을 통해 혐오표현에 대항하는 선순환이 이뤄질 때 차별과 혐오가 사라질 것이란 얘기다.

    이와 관련 올해 서울시는 ‘성평동(성평등한 우리동네 만들기)’ 시범사업을 펼쳤다. 시민단체와 지방정부가 힘을 모아 자체적으로 성평등 교육안을 만들고 서울 시내 30개 중학교를 대상으로 시범교육 중이다. 성차별과 혐오표현의 문제점 등을 알린다. 함경진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활동가는 “아이들의 혐오표현은 여성,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다”면서 “나도 언젠가 노인이 될 거고, 엄마가 될지도 모르고, 우리 엄마가 있고… 이렇게 연결되면 ‘내가 혐오의 대상이 되지 말란 법이 없구나’라는 걸 아이들의 시각에서 깨닫도록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교사를 대상으로 한 성평등교육안 매뉴얼을 만들고 있는 이나영 중앙대 교수는 “연령별·문화권별로 다양한 차이들을 포괄할 수 있는 체계적인 성인권교육안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인권이 존중받는 교실을 위해선 학교와 교사들이 먼저 변화해야 한다. 교단에서 여성·성소수자·이주민 혐오 발언이 걸러지지 않는 교실 환경에서 학생들이 균형잡힌 인권감수성을 기르기는 어렵다. 이윤승 이화여대병설미디어고 교사는 “학교에서 혐오와 차별, 소수자에 대한 인권감수성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교사들이 먼저 바뀌고 이를 통해 교육이 바뀌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명화 학생인권운동옹호관은 “교원 임용 과정에 인권 교육 커리큘럼을 반드시 포함하는 방법을 비롯해 인권 교육을 필수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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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가 말하는 '혐오대응법'

    홍성수 교수

    숙명여대 법학대학

    대항표현은 가장 강력하면서도 근본적으로 혐오표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혐오표현에 관한 논의는 주로 어떤 강제조치를 취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되곤 했다. 물론 혐오표현에 제재를 가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다양한 수위와 형태의 혐오표현을 모두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며, 법적 해결은 그 자체로 지난한 과정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적극 검토되어야 하는 혐오표현 대응방법 중 하나가 바로 대항표현(counterspeech)이다. 대항표현은 혐오표현을 표현으로 맞대응함으로써 혐오표현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이다. 대항표현만으로 문제가 조기에 해결되는 경우도 있고, 당사자가 자신의 권리를 알고 말하고 싸우는 과정에서 ‘자력화’(empowerment)되어 스스로 대항주체가 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대항표현의 과정에서 사회가 혐오표현에 대한 강력한 내성을 기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대항표현은 가장 강력하면서도 근본적으로 혐오표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법적 금지에 따른 부작용이나 남용 위험성도 없다.

    물론 이로써 혐오표현이 일소되는 것은 아니다. 혐오표현은 법, 제도, 문화, 교육 등 다양한 기제들이 함께 작동해야 해결될 수 있으며, 대항표현 역시 문제해결의 한 방법일 뿐이다. 또 하나 주의해야할 점이 있다면, 대항표현을 피해 당사자만의 몫으로만 돌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사건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동료들 모두가 대항표현에 동참해야 한다. 혐오표현은 피해자를 고립시키지만, 대항표현은 모든 구성원이 협력하여 피해자가 아니라 발화자를 고립시킴으로써 문제의 구도를 완전히 뒤바꾼다. 대항표현을 시민사회에만 내맡겨도 안된다. 시민사회의 자율적 실천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국가적·법적·제도적으로 대항표현을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권센터, 상담소, 인권교육, 홍보자료 등을 제공하여 자력화를 지원하고 대항표현을 한 자가 거꾸로 부당한 위협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은 국가·법·제도의 몫이다.

    제3자대응에관해

    혐오표현은 기본적으로 ‘선동’의 성격을 갖고 있다. 소수자들을 공격하는 동시에 제3자에게 혐오와 차별에 동참하도록 호소하기 때문이다. 제3자들이 혐오에 가세하면 소수자들은 더욱 고립되고 배제된다. 혐오표현에 대한 제3자의 대응은 혐오주의자들의 공격에 맞서면서 문제의 구도를 바꾸는 것이다. 일본의 혐한시위는 재일조선인들을 바퀴벌레 취급하며 일본인에서 배제시키려고 하는 것이지만, 재일조선인과 일본 시민의 카운터(counter)운동은 거꾸로 인종주의자들을 고립시켰다. 한국의 반동성애 세력들은 동성애자를 에이즈의 주범으로 낙인찍고 사회에서 배제하려고 하지만,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앨라이운동은 성소수자와 제3자인 시민들이 연대하고 반동성애세력들을 고립시킨다. 제3자의 대응은 즉각적으로 혐오표현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혐오표현의 문제를 공론화하는데에도 기여한다. 일본의 카운터운동은 재일조선인들이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데 기여하고 헤이트스피치해소법이 제정되는 성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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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가 말하는 '혐오대응법'

    류민희

    변호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받아치기' '대항표현'의 경험은 개인을 강하게 만들고 속해 있는 공동체를 바꾼다.

    최근 인터넷에서 가수 엠버의 6분짜리 유튜브 동영상 “내 가슴이 어디 갔지? (악성 혐오 댓글에 대응하기)”을 인상깊게 보았다. “네 가슴은 어디 있니? (평평하네)”라는 악플에 ”음... 좋은 질문이야. 이제부터 찾아봐야겠어.”라고 받아치며하며 ‘가슴을 찾는’ 대모험이 시작된다. ‘에프엑스의 남성멤버’ 등의 악성댓글은 엠버에게 좁은 여성성 규범을 강요한다. 하지만 엠버는 이러한 표현들이 자신을 위축되게 하지 않고 혐오표현을 무색하게 하고 그 말의 모순을 고발하는 유쾌한 풍자를 인터넷에서 나눈다. 엠버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짧은 머리에 공 차기를 하며 노는 소녀들이 그 동영상을 보며 위안을 삼았을 것이다.

    ‘혐오를 넘어’ 혐오대응법 사례를 통하여 차별이나 혐오를 목격하거나 경험한 개인들의 고통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혐오와 차별의 피해자들과 목격자들은 ‘아, 그때 그렇게 대응했어야 했는데’하며 ‘이불킥’을 하고, 스스로의 입을 막고, 무기력함을 비관하게 된다. 하지만 ‘받아치기(speaking back)’ ‘대항표현’의 경험은 개인을 강하게 만들고 속해 있는 공동체를 바꾼다. 혼자 고립되지 않게 함께할 사람들을 만나고, 기록하고, 목소리를 내어 고발하며, 더 다양한 표현을 만들어내며, 공동체 안에서 더 많은 대화를 촉진하고, 때로는 아이러니하게 풍자한다.

    한편 이러한 사회 현상을 전적으로 개인의 역량과 기지에 의하여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부당한 일일 수 있다. 이러한 분들을 묶어주고, 서로를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차원에서 이번 특집 기사가 더욱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이 든다. 인터넷, 학교에서, 직장에서, 이러한 시도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물론 이것에 앞서서 ‘상처 입히는 표현’이 어떤 해악 징후이며, 이것이 어떻게 발전되어 크나큰 사회적 해악이 되는지를 확인하고 알리는 국가적·사회적 선언과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제3자대응에관해

    혐오표현과 차별에서 당사자와 제3자를 완전히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모든 면에서 주류에 속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소수자 집단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목격하며 공동체의 권력관계와 지배질서를 확인하게 된다. 폭력적인 공동체에 대한 실망감을 느끼는 동시에 지배질서를 내재화하고 나아가서 자신의 소수자성을 은폐한다. 차별의 공포를 목격하였고 무기력하게 겪었기 때문이다.

    ‘연계차별’이라는 것이 있다. 소수자 집단에 속하는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자신도 차별과 혐오표현을 겪는 것이다.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어머니가 차별을 함께 겪는 일들이 그러하다. 혐오표현과 차별은 너와 내가 쉽게 분리되지 않는다. ‘나의 일이 아니다’가 아니라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내 일’이자 ‘모두의 일’이 되는 순간을 느낄 것이다. 혐오표현과 차별에 대한 대항은 우리 모두가 온전한 자아로서 살고자 하는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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